한의학에서는 몸을 ‘다스린다’고 하지 ‘고친다’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몸에 대한 한의학의 이러한 시각은 어디에 기원(起源)하는 것일까?
몸을 다스리는 법, 치법
몸은 자연이다. 자연인 몸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철학의 방향에 따라 그 의학의 성격이 결정되는데, 한의학에서는 몸을 ‘자연스럽게 다스리기’로 방향을 정했다. 왜냐하면 몸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법이 바로 ‘우(禹)의 치수(治水)’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 ‘곤이 홍수를 막아 그 오행 펼침을 어지럽게 했다( 洪水 汨陳其五行).’는 구절이 나온다. 곤이 홍수에 대처하는 방법은 홍수에 대항하여 그 물을 막는 일이었는데, 오늘날 홍수 조절을 위해 도처에 세워진 댐을 생각한다면 곤의 대처 방법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성난 물살이 댐을 무너뜨려 곤은 실패했고, 그 뒤를 이은 우(禹)가 물길을 내고 강바닥을 낮추는 준설 작업을 통해 치수(治水)의 대업을 완성하게 되었다. 곤은 자연과 대항하여 싸워 실패했고, 우는 자연에 순응하여 물길을 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결과를 냉정하게 따져보면, 홍수에 대한 곤과 우의 대처 방법 중 누가 전적으로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이는 ‘몸’을 해석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곤과 같이 자신감 넘치게 몸[혹은 병(病)]과 싸워 몸을 ‘고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음양의 조절을 통해 몸이 스스로 회복되도록 잘 ‘다스려주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몸에 생긴 이상 현상인 병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따라 그 의학의 성격이 판가름날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의학은 우(禹)를 법(法)한다. 그래서 ‘치병(治病)’이라 한다. ‘治’는 ‘水+台’이다. 여기서 이(台)는 쟁기로 땅을 부드럽게 한다는 뜻과 함께, 기쁘다는 뜻을 내포한다. 풀어보면 물을 부드럽게 하여 물을 기쁘게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우의 판단이 물의 본성을 잘 따랐다고 해서 ‘순수(順水)했다’고 하는 반면, 물을 막고 물과 싸운 곤의 판단은 물의 본성을 거슬렀다고 하여 ‘역수(逆水)했다’고 한다.
우리 몸에 병이 생기면 먼저 물 흐르듯 잘 ‘다스려보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되지 않으면 결국 곤의 방법으로 ‘고쳐야’ 한다.
사법과 보법
물을 다스리듯 몸을 다스리는 구체적인 방법론은 사법(瀉法)과 보법(補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법은 마치 우의 치수처럼 물꼬 틔우듯 몸의 막힌 기혈(氣血)을 소통시키는 방법을 말하고, 보법은 모자라고 부족한 기혈을 채워주는 방법을 말한다.
먼저 사법의 실천 방법을 살펴보면 ‘한토하 삼법(汗吐下 三法)’이 있다. ‘한토하’는 말 그대로 땀을 내거나 토하게 하거나 설사를 시키는 방법으로, 주로 급성질환에 많이 응용된다. 이 중 한법(汗法)은 한사(寒邪)가 처음 태양경(太陽經)을 통해 침습(侵襲)할 때 발표(發表)시켜 땀과 함께 한사(寒邪)를 몰아내는 것이고, 토법(吐法)은 담음(痰飮)이 갑자기 상초(上焦)에 옹색(壅塞)되었을 때 토해내는 것이다. 또 하법(下法)은 양명열사(陽明熱邪)로 위가실(胃家實)이 되었을 때 사하(瀉下)시켜 열사(熱邪)를 몰아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 가지 사법은 한의학 치법에 있어서 종세불역(終世不易)의 대강(大綱)을 이룬다.
몸을 하나의 관이라고 본다면, 그 표면을 덮고 있는 피부와 입에서 항문까지의 위장관은 ‘나’와 ‘나 이외’를 구별하는 경계선이 된다. 즉, 한토하 삼법이란 ‘나’의 경계를 통해 들어온 사기(邪氣)를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밖으로 몰아내는 치료법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를 비운 다음 휴식 속에 홀로 있게 하면, 비어 있는 ‘나’는 금방 탄생한 새 생명처럼 자연스러운 상태가 된다. 자연의 일음일양하는 율동(律動)에 몸을 맡기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나’를 비우는 것만으로도 몸을 다스리는 치료는 끝난다. 몸은 곧 일음일양(一陰一陽)의 자율성(自律性)을 회복하고 자연의 질서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보법 역시 사법처럼 기본 개념은 간단한다. 일반적으로 몸의 외부에서 들어온 병은 사법을, 몸의 내부에서 생긴 병은 보법을 시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내부에서 병이 생긴다는 것은 대부분 원기(元氣)가 허한 것이 원인이 되는데, 구체적으로는 음허(陰虛), 양허(陽虛), 기허(氣虛), 혈허(血虛) 등이 있을 수 있으며 허(虛)한 것은 보(補)하여 고쳐야 한다.
원기를 보충하는 대표적인 약이 바로 곡육과채(穀肉果菜)이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밥과 고기와 과일과 채소이다. 우리가 일용(日用)하는 음식은 목기(木氣)를 잘 일으킬 수 있도록 단맛[甘味]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보약처럼 달고 맛있다. 그래서 우리가 집에서 먹는 전통 밥상은 십전대보탕의 처방 원리처럼 군신좌사(君臣佐使)로 구성되어 있으며 달고 맛있다. 이때 밥은 군약(君藥)이 되고 탕은 신약(臣藥), 그외 기타 반찬은 좌사약(佐使藥)이 된다. 군약이 단맛이 나는 곡물이므로 우리네 전통 밥상은 전형적인 보제(補劑)라 할 수 있다.
원기(元氣)가 허(虛)할 때에는 보법(補法)으로 고치므로, 의사를 찾기 전에 먼저 일용하는 식사에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 곡육과채의 섭취에 문제가 없다면 다시 그 원인이 음허(陰虛)인지 양허(陽虛)인지를 정확히 구분하여, 보다 전문적인 보법을 통해 적합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의방유취》의 사법과 보법
《의방유취(醫方類聚)》는 1445년 세종대왕의 어명에 의해 저술된 의학백과사전이다. 무려 266권의 방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양 최대의 의전(醫典)이라 할 수 있는 대작(大作)이다.
《의방유취》의 ‘총론(總論)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무릇 사람이 40세 이하에 병이 생기면 사(瀉)하는 약을 먹고, 보(補)하는 약을 먹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만약 허약하다면 그렇지 않다. 40세 이상에 병이 나면 사하는 약을 먹어서는 안 되고 보하는 약을 먹어야 한다.
50세가 넘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 보약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지만 오래 살 수 있고, 양생술(養生術)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보법과 사법의 응용 기준이 달라짐을 적절히 설명하고 있다. 즉, 나이가 들면 반드시 보법을 통해 몸을 보해야 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퇴행성관절염과 보법
한의학에서는 병증(病證)에 따라서 크게 허증(虛證)과 실증(實證)으로 나눈다. 즉, 사기가 성하면 실증이고 정기가 약해지면 허증이라 한다(邪氣盛則實 精氣奪則虛). 그래서 실증에는 사법을, 허증에는 보법을 쓴다고 했다(實則瀉之 虛則補之).
관절은 토의 역할을 하는 마디로 평생 고생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교질은 나이가 들수록 닳고 손상되며 줄어들었다. 그 결과 퇴행성관절염이란 병이 생겼으니, 퇴행성관절염을 허증과 실증으로 분류한다면 당연히 허증에 속하고 그 치료는 보법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한의학적인 치료법으로는 지극히 당연하고 간단한 결론이다.
그런데 왜 보법을 쓰지 않았을까? 퇴행성관절염을 치료할 때 그렇게도 당연한 치료 원칙을 왜 모른 척하고 지키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보법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역사였기 때문이다. 한의학이 시작되는 은(殷)나라 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도대체 마음 놓고 보약(補藥)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있기나 했는가? 전란이 끊이지 않았고 평화로운 시대에도 사는 것이 고만고만하여 나이 드신 어른들에게 보약을 투약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일본 에도[江戶]시대에도 의사가 더 이상 환자를 구할 방법이 없을 때 ‘인삼을 써야 된다.’는 말로 보호자들의 기대를 꺾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끼니조차 어려워 보릿고개를 겪는 가난한 살림에 인삼을 쓰라는 것은 포기하라는 얘기나 진배없었다.
결국 의학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이유에 의해 어린아이, 부녀자, 노인에게는 보약을 쓸 수 없었다. 오죽하면 ‘고려장’이라는 풍습까지 있었겠는가. 노인이 보약을 드시면 돌아가실 때 고생한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보약 드실 형편이 되지 못하는 노인들을 달래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이제는 노인에게도 보약을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1, 2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명절을 제외하고는 식탁에서 고기 구경이 어려울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먹고 살기조차 궁핍했던 시절이었다. 고기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가난함 속에서 퇴행성관절염에 보법을 쓸 수 있는 형편은 될 수 없었다.
2000년대가 되고 이제 우리의 살림살이, 우리의 식탁이 달라졌다. ‘참살이’라 해석되는 웰빙 바람이 불고, 평균 수명도 늘어났다. 더 이상의 사회적인 제약은 없어졌으므로, 의학적으로 보법을 살려야만 할 때가 도래했다. 그리하여 이제 퇴행성관절염은 보법, 즉 한의학의 탁월한 치료 수단인 보약(補藥)으로 고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책도 이러한 배경하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